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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방언 음운론』 머리말

자연을 닮은 2006. 8. 12. 08:18

머리말

 

   이 책은 저자의 박사학위논문(서울대, 1994년 8월)인 “고흥방언의 음운론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몇 군데 손을 댄 곳이 있으나 되도록이면 원래의 모습을 그대로 두려고 했다.  한편으로는 나온 지 여러 해가 지나 고치고 다듬는 일이 쉽지 않은 듯 보였고, 또 한편으로는 결국 같은 내용을 담은 이본을 만들어 놓는 것이 다른 이들에게 번거로움을 끼치는 일일 것 같아서였다.

   저자는 국어학에 첫발을 들여놓을 무렵 통사론에 뜻을 두고 있었다. 대학 3학년 때 임홍빈 선생님으로부터 현대국어 통사론을 배우면서 그 뜻을 더욱 굳혔던 것 같다(졸업논문 지도교수셨던 임홍빈 선생님께 졸업논문 주제로 처음에 상의드렸던 것은 부정문이었다. 나중에 여의치 않아 주제를 바꾸었지만 그것이 씨가 되었는지 최근에 부정문에 관한 논문을 쓰게 되었다(“고흥방언의 장형부정문”, <애산학보> 20, 1997). 지난 국어학회 겨울연구회에서 선생님께 그 논문의 별쇄본을 드릴 때는 마치 오래 밀린 졸업논문이라도 내는 느낌이었다). 그러다가 음운론에 뛰어들게 된 데는 이병근 선생님의 영향이 컸다.  교과과정 개편 때문에 2학년 때 개설되지 않아 듣지 못했던 <국어음운론>을 4학년 2학기에 2학년들과 함께 이병근 선생님으로부터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의 강의 중 특히 중화와 평음화, 폐쇄음화에 대한 것은 상당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트루베츠코이의 중화 개념이 국어의 이른바 음절말자음의 중화에는 적용될 수 없는 것이 아니냐, 그리고 그 대안으로서 평음화와 폐쇄음화를 설정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겠느냐 하는 논의에 감명을 받았던 것이다.  대학원 입학시험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그 문제와 관련된 것이었는데 그 답안을 쓰면서 국어의 중화 문제를 석사논문에서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석사논문에서는 중화라는 개념을 분명하게 규정하기 위해 더 큰 이론적인 문제들을 건드려야 하게 되었다(“음절말자음과 어간말자음의 음운론”, 1989).

   석사과정에 진학해서 한 학기 전에 부임하신 최명옥 선생님을 지도교수로 모실 수 있게 된 것은 큰 행운이었다.  이제 막 음운론으로 전향한 저자로서는 어떤 것부터 공부를 해 나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우선 이론적인 기초를 다지기 위해 일반음운론에 관한 원서들을 무작정 읽었다.  그러나 이론을 어떻게 국어자료에 적용해야 할지 아는 바가 없었다.  석사과정 1학년 2학기 때 최명옥 선생님으로부터 <국어음운론연구>를 들으면서 연구사 정리의 방법에 대해 훈련을 받았는데, 그 훈련을 통해 기존의 연구로부터 문제를 찾아내고 정리하는 기초작업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로소 논문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논문이 통과될 때까지 선생님으로부터 크고 작은 여러 문제들에 대해 세심한 지도를 받으면서 배운 ‘학문에 대한 성실한 자세’는 저자가 그후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면서 한 순간도 잊지 않은 귀중한 가르침이었다.

   석사논문을 쓰면서 국어음운론에서 새로운 이론이나 새로운 자료를 다루지 않으면 박사논문을 쓰기가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었고, 저자 자신이 전남방언을 쓰는 원어민인 데다가 전남방언의 음운론적 연구가 취약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저자의 박사논문의 주제는 자연히 전남방언의 음운론에 관한 것이 되었다.  우선 1991년에 고향인 고흥군의 방언자료를 가지고 모음론과 운소론을 정리했다(“고흥방언 ‘-아’활용형의 음운론적 고찰”, “고흥방언의 음장과 음조”).  석사논문이 자음론이었으므로 음운론의 다른 분야도 두루 다루어 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1993년에 매개모음이라는 형태음운론적 현안에 대해 여러 논의를 정리하고 나서야 이론적인 준비가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고 생각했다(“현대국어 매개모음의 연구사”). 저자는 어디까지나 방언자료에 바탕을 둔 ‘음운론 연구’를 목표로 하고 있었으므로 애초에 전남방언 전반을 다루려던 계획을 수정하여 고흥군의 방언만을 연구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저자의 연구태도는 설명과 이론화 위주가 아닌 기술과 체계화 중심이었다.  아직 보고되고 정리되지 않은 방언자료에 대해서는 설명보다 기술을 앞세우는 것이 학계에 이바지하는 길이라 믿었고 지나친 이론화의 추구는 객관적인 기술을 방해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섣부른 설명과 해석을 제시해 나중에 후회하게 된 곳도 있으나 한편으로는 기술적 태도가 지나쳤음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있다.  또 공시음운론이라는 논문 전체의 주제 때문에 통시음운론적인 내용이나 형태론적인 내용을 제대로 다루지 못했는데 그 중 한 부분을 1997년에 따로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고흥방언의 용언어간의 축소”, <국어학 연구의 새 지평> 태학사).

   결코 만족스런 논문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애초의 허술한 구상과 논의가 이만큼이라도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은 최명옥 선생님의 애정어린 관심과 지도 덕택이다.  저자가 모자란 탓에 선생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배워내지 못하는 것이 늘 안타까울 뿐이다.  논문의 심사과정에서 석사논문에 이어 거칠디거친 글을 또 읽으셔야 했던 김완진 선생님, 논문을 조금이라도 더 논문답게 만들어 주시려고 애쓰신 이병근 선생님, 그리고 논문의 부실한 부분들을 끄집어내 주신 정연찬 선생님과 이승재 선생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밖에도 저자는 이기문 선생님, 안병희 선생님을 비롯하여 국어학계를 이끌어오신 훌륭한 선생님들을 가까이서 대하는 복을 누렸다.  뛰어난 여러 선후배들에게 기대어 도움을 받으며 살아올 수 있었던 것 또한 큰 다행이다.  이 모든 분들께 학문으로나마 평생 빚을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끝으로 보잘것없는 논문을 책으로 낼 수 있도록 국어학총서에 넣어 주신 국어학회의 여러 선생님들께 감사를 드린다.

                                                                                                                         1998. 2.

                                                                                                                          저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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