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2022. 7. 2. 13:26
(《어문생활》 통권 210호, 한국어문회, 2015. 5.)
*한자교육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韓國語文會로부터 청탁받고 쓴 글입니다.
한국의 近代化는 지극히 險難했다. 80여 년에 걸쳐 外勢의 壓迫과 植民統治, 그리고 온 국토와 국민을 유린한 戰爭을 겪고 나서야 근대적인 국가의 樹立을 향해 힘겨운 걸음을 뗄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근대화를 이끈 것은 한글의 整理와 普及이었다. 한글은 탄생 이후 400여 년을 漢字의 威勢에 눌려 숨죽여 지내다가 主權 喪失의 위기에 처할 즈음인 19세기 말에 그 價値를 인정받고 사회의 全面에 登場하게 되었다. 政治經濟的으로 어려운 시기에도 한글은 韓民族의 社會文化的 潛在力을 키워 나갔다.
한국이 온갖 苦難 속에서도 빠르게 先進國 문턱에 이르게 된 데는 한글의 힘이 컸다. 늘 곁에 있는 空氣의 고마움을 잘 모르고 지내듯이 쉽고 편해서 대단치 않게 느껴지는 한글이 國家發展에 큰 功을 세웠다는 사실은 잊기 쉽다. 한글이 없는 韓國의 모습이 어떨지 想像해 보라.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解放 後 수십 년간 한글專用과 漢字混用을 놓고 지식인들의 論爭이 뜨거웠다. 1990년대에 한자혼용 주장자들은 사회가 계속 한글전용으로 흘러가자 敗北를 豫感하고 漢字倂用이라는 작은 領土라도 지키기 위해 奮鬪하게 되었다. 지금 그 결과를 말하면 한글전용의 勝利이다.
2014년 9월 敎育部는 ‘문이과 통합형 교육과정’의 一環으로 2018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 이상의 敎科書에 한자를 倂記하는 방안을 推進한다고 발표했다. 漢字倂記는 종래의 한자병용과 비슷한 말이다. 個別 單語의 漢字表記를 강조한 용어가 한자병기이다. 즉 교육부의 발표는 초등학교 교과서에서 한자병용을 實現하려는 試圖라고 할 수 있다.
그 발표 이후 일었던 論難이 한동안 잠잠했다가 올해 3월 전국 市道 敎育監 모임에서 漢字倂記 撤回를 교육부에 요구했다는 報道가 나오자 논란은 다시 불붙었다. 한자병기를 批判하는 쪽은 ‘학습부담 증가’, ‘사교육 조장’, ‘시대착오적 발상’ 같은 닳고 닳은 表現을 써 가며 輿論을 有利하게 끌고 가려 하고 있다.
현실에서는 한자혼용이나 한자병용보다는 한글전용이 절대적으로 優勢하다. 大衆의 文字生活에서는 한글전용이 便利하기 때문이다. 韓國語 文語는 한글로만 표기해도 별문제가 없다. 한자는 한국어로 疏通하는 데에 사용할 필요가 없는 문자이다. 그럼에도 교과서에 한자를 병기하여 한자를 最小限으로라도 敎育해야 한다는 주장은 當爲性이 있는 것일까?
비록 한글전용으로써 문자생활이 잘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한국인의 言語能力이 한글만으로 完成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제는 處地가 뒤바뀌어 한글 밑에서 숨죽이며 지내게 된 漢字가 한글이 다하지 못하는 몫을 해낼 수 있음을 제대로 認識해야 한다.
큰 국어사전에 실린 標題語를 기준으로 하면 한국어 語彙의 57%가 純粹 漢字語이고 한자 形態素가 포함된 混種語가 11%이다. 漢字를 모르고서는 한국어 어휘를 自由自在로 驅使하는 데 限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한자를 몰라도 한자어의 뜻을 알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專門家들이 지적하듯이 한자를 알면 한자어의 뜻을 훨씬 더 正確하게 이해하게 되고 관련 한자어에 대한 知識도 豊富해진다. 語彙力의 깊이는 思考力의 깊이와 직결된다. 특히 한자어에는 抽象語가 많아서 한자 지식이 사고력의 발달을 돕는다. 겉으로는 한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속으로는 한자를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이와 같이 漢字敎育은 文字敎育으로서보다 語彙敎育으로서 강조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初等學校에서 한자교육을 하는 것이 좋은가? 우선 교과서 한자병기가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實施를 意味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교과서 한자병기가 초등학교에서 해당 한자를 반드시 가르치라는 뜻이 아니라 參考하라는 뜻이라는 主張도 있다. 한자를 알면 좋고 몰라도 되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學生이 몰라도 되는 情報를 교과서에 싣는 것이 옳은 일인가? 교과서에 한자를 露出했으면 가르쳐야 하고 안 가르칠 것이면 노출하지 말아야 할 터이다. 초등학교 교과서 한자병기는 초등학교 한자교육의 실시를 의미한다.
1997년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英語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당시에 이를 반대하는 주장도 적지 않았다. 이제는 그것이 잘못된 敎育政策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듯하다. 한자교육도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된다. 초등학교 한자교육이 실시된다면 20~30년 후 그 政策이 잘못된 것이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少數일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中學校 95% 이상에서 漢文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漢文敎育은 한자교육을 前提한 것이다. 한자라는 것이 배우기 어려운 글자이기는 하지만 學習의 負擔을 줄이면 初等學生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중학교 3년간 배워야 할 900자 중 일부를 초등학교 高學年 때 배우는 것은 效果的이고 또 可能한 일일 것이다.
교과서 한자병기와 관련된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초등학교 適正 한자 數를 400~500자로 한다고 한다. 한자병기에 사용하는 한자를 이 範圍로 制限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결국 초등학교에서 한자 400~500자를 敎育하겠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중학교까지 배울 900자 중에서 그 折半을 초등학교 때 배우는 것은 無理이다. 초등학교 때 100~150자만 배워도 그 效果는 充分할 것이다.
2009 敎育課程부터 초등학교 ‘창의적 체험활동’에 한자 科目이 追加되어 현재 學校에서 한자를 배우는 초등학생이 全體의 절반 정도로 推算된다고 한다. 學院 등 私敎育을 통해 한자를 배우는 초등학생을 포함하면 초등학생 大部分이 많든 적든 한자를 배우고 있는 것이 現實이다. 이러한 현실을 直視한다면 초등학교 한자교육을 反對할 理由가 없다. 다만 그 學習量을 얼마로 정하고 어떤 方法으로 교육할 것인지가 問題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