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을 닮은
2020. 8. 19. 13:33
(《어문생활》통권 72호, 한국어문회, 2003. 11.)
*韓國語文會로부터 서예에 관한 글을 청탁받고 쓴 글입니다.
書藝는 漢字文化圈의 독특한 예술이다. 視覺藝術이라는 점에서 크게 보면 美術의 範疇에 들 수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예술 분류법에서 繪畵와 書藝는 구별되었다. 흔히 어떤 이가 詩․書․畵에 能했다는 표현에서 ‘서’는 서예, ‘화’는 회화를 가리켰던 데서도 서예의 독립적인 地位를 확인할 수 있다. 그만큼 서예는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중요한 素養의 하나로 인식되어 왔다.
서예를 발달시킨 要因으로 가장 큰 것은 그 道具인 붓이 아닌가 한다. 西洋처럼 펜이 주요 筆記具로 사용되는 상황에서는 펜의 가느다란 劃이 글자를 표현하는 과정에서 그려낼 수 있는 모양에 한계가 있다. 펜끝에서 나오는 획의 변화는 획이 나아가는 방향과 획의 길이에 限定된다. 반면에 붓끝은 내리누르는 힘에 따라 섬세한 두께의 변화가 획의 너비를 변화시켜 다양한 幾何學的 形象을 지어낸다. 여기에서 글자는 音聲을 視覺化하는 記號를 넘어서서 붓을 쥔 사람의 感性과 想像力을 담는 그릇으로 다시 태어난다. 붓으로 쓴 글씨는 그림에 다가선다. 실제로 붓글씨로 쓴 한자는 그 한자를 모르는 西洋人에게는 抽象化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다.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집집마다 멋진 漢字語句를 쓴 서예 작품을 額子에 넣어 벽에 걸어 놓는 것을 대단히 品位 있는 일로 생각한다. 그 한자어구의 내용이나 그 글씨의 아름다움을 잘 이해하고 있는가와 상관없이, 그리고 그것이 그 집의 家訓과 관계가 있는 내용인가와도 상관 없이 그런 작품은 그 집의 멋을 내는 데에 서양 집의 名畵를 충분히 대신한다. 현대에 와서 붓이 더 이상 주된 필기구가 아니기 때문에 서예는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그 때문에 더욱 대중은 서예에 대해 憧憬과 敬意를 품게 된 것인지 모른다.
이제 볼펜과 연필 등 서양식 필기구도 컴퓨터 字板에게 자리를 많이 빼앗겼다. 자판으로 찍어내는 글자는 누가 찍어내든 똑같은 모양으로 탄생하고 그 글을 읽는 讀者에게 意味를 傳達하는 것만으로 존재이유를 삼는다. 인터넷문서의 글자의 洪水 속에서 질식의 위험을 느끼는 젊은이들은 한글, 한자, 알파벳, 가나, 특수문자 등 컴퓨터 자판을 통해 실현할 수 있는 온갖 視覺的인 記號를 동원하여 그 옛날 붓글씨에 담아넣던 감성과 상상력을 자신의 글자에 묻혀 보려고 애쓰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런다고 그 글자에서 사람의 냄새가 얼마나 풍길 수 있을까?
컴퓨터로 실현할 수 있는 글꼴(書體)의 종류가 점점 많아지고 있고 그것을 이용해 글자의 단조로움을 상당히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 宮書體라는 멋진 붓글씨로 자신의 글을 印刷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의 손이 잡은 붓에서 나온 글씨만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지는 못한다. 機械文明이 발달할수록 사람이 그리워지고 마찬가지로 붓글씨가 그리워진다.